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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돌한 대학생 500만원 들고 6개월 여행 다녀온 이야기.



공지 및 방명록 용도의 포스팅. 그냥 사는 이야기

이 포스팅은 항상 블로그 메인에 보이게 됩니다.
이글루스는 방명록이 없어서, 여기 댓글을 방명록 용도로 쓰려고 하니, 댓글 많이 남겨 주세요 ^^;;

 


    0. 블로그 이용 설명.

   읽으시면서 "다음 글" 이나 "이전 글" 클릭해도 내용상 이어지지 않는 글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저는 카테고리를 나누어 두었지만, 이글루스 블로그 시스템은 이전이나 다음 글을 카테고리 구분 없이 연결시켜 버려서 발생하는 문제점인데....


   그냥 오른쪽에 있는 해당 카테고리 클릭하면,  글 목록 쭈르륵 뜨지요?   그 상태에서 읽고 싶은 글 클릭해서 읽으신 후에,  백스페이스로(키보드의 ←키) 다시 목록으로 빠져 나와서 다음 글 클릭하시는 방법으로 읽으시면,   여행 진행 순서대로 편하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1. 여행.



  쎄씨 2011년 10월호 인터뷰.  짧은 글이지만, 다녀온 여행에 대해 압축적으로 잘 설명이 되어있다.




두줄요약.
500만원들고 6개월 유럽과 중동 32개국 92개도시 20,000km를 다녀왔다.
카우치서핑, 히치하이킹, 음식 직접만들기, 킥보드, 노숙 등의 방법으로 경비를 절감했다.





   2. 여행기.

 - 잊지말자. 여행기 작성의 근본적인 목적은 기록.
 - 심혈을 기울힌 명작 보다는 꾸준한 평작.
 - 남을 위한 글이 아닌 나를 위한 글.
(2014년11월 추가) - 일주일에 꼭 2개 이상 쓰자




   3. 블로그.


  0. 여행계획 + 다니면서   (완료!!)
블로그 개설한 날(2010.07.23) 부터 여행 떠나는 날 새벽(2010.08.06) 까지 쓴 6개월 여행을 계획하던 글들과, 여행의 포인트였던  카우치서핑, 히치하이킹, 음식만들기, 킥보드에 대한 소개글과  유레일을 구입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글.


  1. 6개월 여행의 시작    (완료!!)
핀란드 헬싱키에 처음 도착해,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갔던 내용. 

  2. 익숙해지는 하루하루     (아직..)
이탈리아에서 3주를 보내고, 몇 군데의 동유럽을 다니기까지 

  3. 이젠 일행이 필요해     (절반정도 완료!!)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첫 동행을 만났던 것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프랑스인 부부와 16일간을 동행. 헤어지고 나서도 동행을 계속 구하게 된 사연.               

  4. 친절한 나라 터키의 한달     (아직..)
친절한 사람들, 맛있는 음식. 나와 제일 잘 맞았던 터키.

  5. 생각지도 않던 중동     (거의 다 씀!!)
셍겐조약 덕분에 유럽에 3개월밖에 못 있게 되어 갔던 중동이지만 너무 좋았던..        

  6. 그 외 중요한
정말 열심히 쓴 글 반,  그냥 보이고 싶은 글 반.

  7. 결산
여행 다니며 매달 결산 했던 글들과, 6개월 마치고 총 결산 했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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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지만 굵었던 호주여행.   (완료!!)
시드니에서 하루, 멜버른에서 열흘, 브리즈번 일주일.  처음으로 카우치서핑을 시도하고, 히치하이킹에 대해 알게 되었던 여행.

  상해이야기.     (거의 완료!!)
2011년 7월 여름. 학교 어학연수단에 참가.  단체 관광 이야기, 그냥 상해 에피소드, 중국에서 카우치서핑한 이야기.

  카우치서퍼 호스팅하기.
한국 우리집에서 카우치서퍼들 호스팅했던 이야기.

5-57. 이스라엘 국경에서 이집트 비자 받기 좌충우돌 5. 생각지도 않던 중동



  오랜만에 "정보"를 넣어도 좋으련만   여행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기록을 하지는 않다보니,  비자 관련된 정확한 정보까지는 작성이 힘들 것 같다. 



 시간은 거슬러 오르고 올라서...   여행준비를 하다가 "쉥겐"국가에서 3개월밖에 머물 수 없으며,   쉥겐 외부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방법으로 조금 연장을 하는 것도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을 때이다.     일정을 다시 짜야만 한다.  여행 준비 과정에서도 모든 내용을 블로깅까지 했듯.  성격상 "뭐 어떻게든 되겠지 룰루랄라" 는 하지 못한다.  쉥겐 외 국가에서의 나머지 일정을 만들어야만 한다.



  마지막 쉥겐국인 그리스를 나온 이후부터 3개월 정도 여행을 더 다녀야 하는데...   1개월은 비쉥겐 동유럽국, 1개월은 터키를 여행한다고 치고...    나머지 1개월은 어디를 가야할지  어디에서 비행기타고 한국으로 돌아와야될지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고민끝에 나온 일정이  터키 → 시리아 → 요르단 → 이스라엘 → 이집트  의 1달 여행  모두 육로로 다닌 이후에  이집트에서 터키로 비행기타고 돌아가서 원래 계획했던대로  터키 → 한국으로 돌아오면 된다.     비자는 모두 OK  터키 → 시리아 → 요르단 → 이스라엘은 국경에서 비자 받으면 되고,  이스라엘 → 이집트는    이스라엘 내에 있는 이집트 대사관에서 받으면 된다.    출국을 에일라트에서 해야해서 무조건 에일라트를 경유해야만 했는데, 여기에 대사관도 있다고 한다.      생각만큼 일정이 꼬일 것 같지는 않다.   어차피 쉬어가는 개념으로 묵어가는 에일라트 같은 도시에서 하루정도 쉴 시간이 남는데,  그때 비자 받으러 가면 된다.




    에일라트의 둘째날.  도착한날 야밤까지 길에서 떠돌다보니, 매우 우울한 도시인줄 알았는데 낮에보니 괜찮더라.



   멀리 보이는 홍해와   그 건너편에 보이는 요르단.   늦잠자고 점심때쯤 나와서 느긋느긋 걸어간다.   생각해보니 이제 이집트까지만 가면 마지막 국경통과이다.    일반적인 한국인의 삶으로 되돌아가면  그냥 여행지만 일년에 한번 짧게 가는 여행밖에 못하게 될 것이고..    그럼 내 마지막 육로 국경통과가 될 수도 있겠더라. 




  대사관으로 가는 길.  전반적으로 깔끔한 느낌의 도시였다.  국경에 있다보니 농촌느낌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넷북으로 인터넷을 하다가 구글 지도를 캡쳐해서 보관해두고 길에서 열심히 넷북을 들여다보면서 목적지로 향한다.   길에서 넷북을 펼쳐놓고 정말 "북" 보듯이 들고 다니는건 정말 모양새가 살지 않는다.  지금처럼 태블릿피씨나 스마트폰같은게 보급된시절이면 참 좋으련만,  내가 한국을 처음 출국했던 2009년에는 아이폰이 이제 막 들어오네 안들어오네 할 시기였다.      



     드디어 이집트 대사관 발견.   넷북들고 헤메다가 목적지 찾으면 참 기분이 좋다. 





   비자받으려고 모여있는 사람들.  유럽에서 온 사람들인듯 싶다.  아마 가이드 한명과 나머지 여러명으로 구성되어 있겠지?   정교회 쪽의 신부님이 계신걸 보니  예루살렘쪽에서 성지순례하고 이집트 관광 잠깐 다니다가 귀국하려고 모여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비자받으러 왔습니다!!  하면서 여권을 내미는데..   엥? 사진이 필요하단다.  사진!? 왜?  여권에 비자 찍어줄때 사진 붙여주는것도 아니면서 사진이 왜필요해!?   이때 시간이 3시정도였고,  대사관 닫는시간이 5시인가 그랬는데  당장 주변에 사진찍을 곳도 없고,  어디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더라.




    급히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 사진 어디서 찍을 수 있는지 물어보니  주변에 있는 슈퍼마트를 알려준다.   거기에 뛰어가보니 마침 쉬는날이다....  거기서 다시 사람들 붙잡고 물어보니,   도시 중심부에 높은 건물 있는 쪽 가서 다시 알아보란다.    또 다시 열심히 뛰었다.       만약에 여기서 비자 못받으면  여행 일정이 하루 늦춰지는데...     이집트는 안그래도 가봐야할 곳도 많고  남부로 내려가기도 일정이 빡쎄다.     일정연기를 어떻게든 막기 위해 열심히 뛰어서 사진을 찍으러 갔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센터에 가니 여기는 열었더라.  에일라트에 1개있는 쇼핑센터다.   이마저도 없었으면 정말 큰일날 뻔 했다.  여기에 있는 즉석 사진관에서 할머니가 찍어주시는 사진을 받아다가 다시 뛰어 돌아갔다.   계속 뛰느라 너무 힘들었다. 




  이때 찍은게 저 사진이다. 그냥 정신 없이 뛰느라 머리 휘날렸던 흔적이 그대로.  허구헌날 입고 다니던 형광색 반팔티까지 그대로...     나중에 이것도 추억이라고 민증 새로 발급하며 이사진으로 다시 받았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 출장갈때 신정문에서 민증 검사하는 사람들마다 한번씩 웃는다.  하하;;   신입사원때는 같이 출장간 선배들이 다 한마디씩 하는 재미도 있었다;;     여하튼  사진 들고 뛰어 돌아가니 아직 늦지는 않았더라.   




   이 친구는 일본에서 온 아가씨인데,   대화를 좀 하다보니 자기 할아버지가 한국사람이며  본인 이름도 한국이름을 사용한단다.    할아버지가 도자기쪽 기술자라서 일제시대에 일본에 잡혀와서 일본여자도 만나서 결혼했는데  할아버지가 일본을 증오해서 본인 이름도 안바꾸고  아들딸들 및 손자손녀까지 전부 한국식으로 작명을 해줬다.     



  그래서 이분의 이름이 무려 김춘향인가 이춘향인가 그랬다.   일본에서 실제로 쓰는 이름이냐고 물어보니 자기 신분증/여권에도 다 춘향이로 되어 있단다;;;  하하  정말 대단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야스오같은 일본이름을 그냥 한국 주민등록증에 쓰고 살아 가는건데  학창시절에 매우 힘들었을 것 같다.      가끔 만나는 한국인들이 여권 한번 보여달라고 하는거는 매우 익숙하단다.   하긴 이름 듣는 모든 한국인이  여권 한번 봐도 되냐고 하긴 했겠다.






   여긴 그냥 짜투리사진.    이날 늦잠자고 비자받고 사진찍은 것 말고 한일이 없다.   그래도 태어나서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으로)  오게 된 홍해인데 바다를 보긴 봐야할 것 같아서 부지런히 내려왔다.   







  모래도 별로 좋지 않은 그냥 평범한 백사장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었다.     나도 대충 둘러보고 말았다.   비자받느라 너무 지쳐서였을까..   그냥 사진 몇장 찍고 숙소로 돌아갔다. 

5-56. 연락 안되는 카우치서핑.. 노숙위기에 처했던 에일라트 5. 생각지도 않던 중동

자..   이날은 히치하이킹을 하고 에일라트에 매우 늦게 도착했다.




   이미 카우치서핑 사이트에서 저녁 늦게 만나기로 했었기 때문에,  시내 이곳저곳 그냥 다니면서 시간을 때운다.   이날은 다음날에 여유있게 관광을 좀 할 줄 알았는지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일단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흑인이라는데서 매우 놀랐다. 아프리카에서 일단 입국할 수 있는 항구도시가 에일라트이다보니, 여기에 흑인 비율이 엄청 높다고 한다.




   적당히 시간때우며 기다리다가...  만나기로한 시간이 되어 받았던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는데...     전화를 안받는다.  헉..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전화할때마다 길에서 사람들한테 빌려서 한통화씩 해야되다 보니까,   전화하기도 힘든데 전화를 안받네..  주소도 모르는데..  



  이럴때는 이곳저곳 다니면서 와이파이 되는 곳을 찾는다.  와이파이만 쓸 수 있으면 그냥 적당한 벤치에 앉아서 카우치서핑 메세지함을 확인한다.  제발 무슨 메세지라도 와있기를...      이날 아마 이 도시 게시판에도 글을 썼던 것 같다.  혹시라도 다른 재워줄 사람이 있나 해서..




이렇게 대충 물건을 주변에 놓고 계단에 앉아서 인터넷을 좀 썼다.  여기도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었다.




여기도 와이파이가 되는 곳이었다....  하하;;




     이렇게 이곳저곳 떠돌면서 인터넷을 쓰다가,  어찌어찌 다시 연락이 되어 그를 찾아갔다. 다행히 인터넷 쓰면서 대기하던 곳에서 크게 멀지 않았다.    이래서 카우치서핑으로 찾아가기 전에 꼭 주소/전화번호 및 모든 정보를 받아놔야한다.   예전에 이탈리아에서도 카우치서핑 깜박하고 있다가 내가 찾아가자 그제서야 기억해낸 사람도 있었고...! 






  이번 호스트는 이 친구였다.  처음에 사진봤을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백인이 아니라서 물어보니,  본인은 무려 팔레스타인인이란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봤었던 사람들처럼 팔레스타인 국적을 가지고 유태인 구역에서 사는 것인가 물어봤더니,   국적은 또 그냥 이스라엘인이란다.   대충 이해했던 것은  분쟁 있을 당시에 그의 부모님께서 피난가지 않으셨고 그냥 눌러 앉아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국적이 부여 되었다는 식이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예루살렘/텔아비브와 멀리 떨어져 있는 남쪽도시라서 가능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다른 사람들처럼 유태인에 대한 뚜렷한 적대감을 보이지는 않더라.  그의 국적에 얽힌 사연이 매우 신기했다.  이런 얘기들을 듣고 나서 에일라트 시내를 다녀보니,  정말 백색 유태인을 찾기가 힘들다는걸 알게 되었다.   체감상 40%흑인, 40% 팔레스타인 20% 유태인인 느낌. 




    하룻밤 자고 나와서 찍은 사진.   야밤에 노숙위기에 처해서 다녔던 모습과 잘자고 일어난 아침에 햇살 받으면서 다니며 보는 거리의 모습이 너무 달라서 신기했다.




  둘째날 밤.   사정상 이친구는 낮/오후시간에 함께해 주지 못했는데..   그래서 야밤에 나를 자기 일하는 가게에 초대했다.  




   피자먹으며 여행얘기 하며 시간을 때웠다.   대화를 나눌 시간이 많지 않아 아쉬웠던 호스트.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니 이렇게 잠깐잠깐 시간을 내서 같이 있던 호스트들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게 된다.ㅠ      이번 글을 쓰면서도 다시 한번 기록의 중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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